졸문 칼럼 ‘반구대’를 써온 지 20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내 손으로 깎아 쓴 연필과 지우개가 그립다. 한때 노트북을 펴 놓고 자판을 두드리기에 열중했으나 글쓰기 속도는 물론 글의 끄나풀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결국 컴퓨터 글쓰기를 포기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인 구양수(歐陽修)는 글은 삼상(三上)에서 나온다고 했다. 삼상을 말에 올라탄 마상(馬上), 침대 위의 침상(枕上), 그리고 뒷간인 측상(厠上)이다. 그의 수많은 글들이 이 삼상에서 구상되었다니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 연암 박지원은
넓은 바다에 살며 몸을 살찌우다가 산란기에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다. 연어의 회유(回游)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과정이다. 바다로 나갈 때는 포식자를 속이기 위해 바닷물고기처럼 피부색을 바꿔야 한다. 강보다 짠 바닷물에 서식하려면 몸의 생화학적 구성도 조절해야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회유하는 모습은 놀랍다. 회유 하다가 그 넓은 바다에서 길을 잃더라도 새로운 장소를 서식지로 삼아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연어과 어류의 다양성이 풍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등 연어잡이 문화권에서는 회유하는 첫 연어를
"우리 동지들은 중국과 소련, 미국 정세를 분석하며 난로도 없는 사무실에서 야근했고 신문철을 깔고 잡지를 베고 잤습니다. 진보 정권이 국가 최고 정보기관을 뒤지고 많은 비밀 자료를 폭로하면서 우리를 죄인처럼 대할 때 가슴이 터질 듯 아팠습니다." 최고의 북한 전문가로 알려진 91세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3월 22일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1·2’ 출판기념회에서 남긴 말이다. 그는 정보기관이 매도되는 상황에서 정보분석관의 활동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 회고록을 썼다. "근무 중 인지한 기밀은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는 묵
‘갔다’ ‘돌아가셨다’ ‘멀리 떠났다’ ‘천국 가셨다’ ‘밥수저 놨다’ ‘구들장 졌다’ ‘망천길 떠났다’ ‘세상 등졌다’ ‘황천길 떠났다’ ‘골로 가다’ ‘북망산(北邙山) 가다’ 세상을 하직했다는 의미의 별세(別世)에서부터 시작해 ‘棄世(기세)’ ‘永眠(영면)’ ‘作故(작고)’ ‘他界(타계)’의 한자식 표현도 다양하다. 신분에 따라 임금이 죽으면 昇遐(승하)했다고 하고 ‘死去(사거)’의 높임말로 ‘逝去(서거)’가 있다. 천자(天子)는 ‘崩(붕)’으로 태산이 무너짐을 나타낸다. 심지어 종교에 따라 ‘涅槃(열반)’ ‘ 召天(소천)’ ‘
아이가 구슬을 삼켰는데 소아 내시경으로 구슬을 꺼내줄 병원이 없어 충청도에서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 소아 환자가 전라도에서 구급차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인천 가천대 길병원은 지난 연말 의사 부족으로 어린이 입원 진료를 잠정 중단했다. 일요일이었던 2월 5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소아전문병원에선 외래 대기 번호표가 300번까지 나가 있었다. 주요 상급병원 필수 의료 인력난이 심각하다.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의 올해 전공의 충원율 평균은 77%에 그쳤다. 소아청소년과
‘버들강아지 눈떴다/봄 아가씨 오신다/연지 찍고 곤지 찍고/봄 아가씨 오신다/봄 아가씨는 멋쟁이/머리에다 꽃 꽂고/덩실덩실 춤추며/나비 등에 업혀 온다.’ (동요 ‘봄 아가씨’) ‘버들개지’로 알려진 버들강아지. 왜 ‘강아지’라는 말이 들어갔을까. ‘가야지’와 ‘강아지’의 발음이 비슷한 데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버들개지의 솜털처럼 보드라운 털이 강아지의 그것과 닮았다 해서 ‘버들강아지’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유추하는 사람도 있다. 봄소식에 꽁꽁 얼었던 냇물이 드디어 풀리기 시작했다. 아직 천변 여기저기에 잔설이 남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2월 27일 국회에서 무효표 때문에 검표가 지연됐으나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뜻과 달리 간신히 부결됐다. 면책특권과 불체포 특권은 국회의원이 누리는 대표적인 특권이다. 한국은 1948년 제헌헌법부터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과 불체포 특권을 보장해왔다. 헌법 44조에서 국회의원은 현행범이 아닌 이상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되지 않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선거철이 되면 면책 특권과 불체포 특권 폐지에 대한 공약이 쏟아진다. 본래 취지와 달리 비리 의원 개인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오·남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울산에서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역이 장생포역이다. 지금 SK 정유공장 구내에는 그 장생포역이 있다. 일제는 2차 대전 중에 군사요지, 공업요지, 어업 전진기지였던 울산에 울산-장생포 간에 철도지선을 부설하여 군수물자를 수송했다. 원산에 있던 정유공장을 울산으로 이전했을 때는 고사역(古沙驛)을 신설하기도 했다. 1921년 울산-경주간 동해남부선이 개통되면서 울산에서 기차가 처음 선을 보였다. 동해남부선은 협궤로서 조선철도 회사가 운영하다가 1928년 국철로 편입되고 노선 이름은 동해중부선으로 바뀌었고 포항-대구까지 연결됐다. 당시 울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느새 1년째를 맞이한다. 전쟁은 장기화되고 어떻게 끝날지 오리무중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기디데스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은 냉혹한 스승이다"라는 말로 우리를 일깨운다. ‘냉혹한 스승’ 전쟁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는 아무런 대비도 못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 전쟁이지만 지역 분쟁을 넘어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 중대한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주목된다. 오늘날
行(행)은 사방이 뚫린 네거리를 본뜬 모양으로, 네거리에는 많은 사람이 오간다는 데서 ‘가다’, ‘다니다’라는 뜻이다. 네거리는 많은 사람이 줄지어 다니기에 정보나 물물교환 장소로 적합하다. 은행(銀行)은 글자대로 풀이하면 ‘은을 취급하는 가게’라는 뜻이다. 은행이라는 이름은 옛날 중국에서 통용되던 화폐가 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영어 뱅크(bank)는 이탈리아어 반코(banco)에서 유래됐다. 반코는 ‘돌의자’ ‘책상’ 따위를 의미한다. 금융거래는 중세 수도원의 돌의자에서 싹텄기에 bank가 됐다. "자식에게 물려
"대부분 3~4층 건물은 뻘 위에 떠있으며 미세하게 기울어있는 건물도 상당수다." 1990년대 초 울산시 건축심의위원회에 보고된 남구 삼산동 일대의 건물실태였다. 고층 빌딩의 경우 지하 암반까지 파일을 박아 건물을 고정시키고 있으나 일반 건축물의 경우 그렇지 않으니 지진이 발생할 경우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당시 건축심의회의 조치는 2층 이상 건물 건축 시 허가 신청서에 지질검사서를 첨부하는 땜질 처방에 그쳤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난 2016년 7월 5일 규모 5.0 급의 울산 앞바다 지진에 이어 9월 12일 규모 5.1
월급, 근무조건, 사회적 평판 등을 종합했을 때 자기 일에 가장 만족하는 직업군은 판사인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정보원이 우리나라 주요 직업 621개 직업 재직자 직업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다. 그러나 한국은 ‘죽은 법조인의 사회’라는 말과 함께 법률 기술자라는 말이 나돌더니 최후의 보루, 대법원마저 의심받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법의 상식은 보편타당해야 한다. 그런데도 요즈음 법의 상식은 물론 일반 국민 상식과도 동떨어진 이상한 판결들이 잇달아 나오면서 사법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심지어 "하루빨리 AI(인공지능) 판사가 등장해야
영국 통신사 ‘로이터’는 남한의 DMZ 인근 화천이라는 곳에서 산천어 축제가 열려 많은 사람이 얼음낚시를 즐겼다고 소개했다. 미국 ‘AP통신’도 관광객이 산천어를 잡기위해 얼음 구멍에 낚싯줄을 드리운 사진과 함께 ‘산천어축제는 매년 10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축제’라는 설명을 붙였다. 지난 1월 29일 누적 관광객 131만명을 달성하고 대장정의 막을 내린 ‘2023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 축제’가 최근 세계에서 주목을 끄는 한국의 대표 축제가 됐다. ‘서편제 보성 소리축제’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 ‘함평나비축제’ ‘지리산 피마
우크라이나 전쟁 덕에 세계 주요 에너지 기업들이 지난해 막대한 이익을 냈으면서도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투자는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유가 급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면서 ‘횡재’에 세금을 더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횡재세(windfall tax)는 직역하면 ‘바람에 날려 온 이익’이다. 횡재세는 1997년 영국 노동당 집권 직후 생겼다. 보수당 마거릿 대처 정부 시절 많은 국영기업이 민영화됐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기업에 뒤늦게 횡재세를 부과한 것이다. 이렇게 조달된 1조원 가량은
"제발 우리를 구해주세요. 그럼 저는 당신의 노예가 될게요."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있던 시리아 7세 소녀가 구조대원에게 호소했다. 지난 6일 튀르키예 동북부 에르진잔주 가지안테프에서 서쪽으로 33㎞ 떨어진 내륙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했다. 폐허 속 교차로 시계탑 시계는 4시 17분을 가리킨 채 멈춰 있었다. 10개 주의 1,350만 명이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 여진이 이어지면서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인구의 99%가 이슬람 신자인 튀르키예는 성경의 무대였다. 이방인들에게 최초로 기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 서쪽 끝, 샤를 드골 광장 한복판에 위치한 에투알 개선문은 에펠탑과 함께 프랑스를 상징하고 있다. 1836년 7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때 전사한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높이 50m, 너비 45m에 정면의 거대한 아치 안쪽 천장에는 혁명전쟁 당시 프랑스 측에서 승리한 영광스러운 전투들을 기념하고 나폴레옹 전쟁시기 프랑스를 위해 싸웠던 660명의 장군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바로 아래에 있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의 묘’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늘 타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개선
한자에서 ‘酉(유)’가 들어있는 글자는 ‘술’과 관계가 있다. 酉는 술병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술을 ‘酉’로 표현했다. 이후 술은 물과 비슷하다며 ‘氵’변을 붙여 ‘酒’ 자를 만들었다. 또 酉에 州를 붙인 글자 酬는 술 권하는 ‘수’가 됐다. 손님으로부터 받은 잔을 되돌린다는 뜻이다. 보수(報酬)는 은혜에 보답하는 뜻에서 술을 따라 주는 것이다. 지금은 ‘돈’을 주는 것으로 되었지만 옛날에는 보수가 고작 술 한잔 따라 주는 것이었다. 한편 酌(작)은 ‘술을 따른다’는 뜻으로 손님이 주인에게 잔을 권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미국 작가 피츠 제럴드의 1922년 소설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을 대폭 각색한 영화다. 충격적인 것은 갓 태어난 벤저민의 몸은 80대 노인이다. 더 놀라운 건 나이 먹을수록 젊어진다는 사실이다. 여주인공 데이지는 소녀 때부터 벤저민에게 호감을 가진다. 하지만 꽃병 속 꽃처럼 시들어노인이 된 데이지는 아기가 된 벤저민 곁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늙지 않고 젊어지는 벤저민이나,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출근하고 일을 하고, 퇴근하고 밥을 먹고 또다시 TV 앞에 앉아 있는 우리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명당은 존재하는가? 명당의 기본인 풍수지리는 땅의 기운을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 짓는 이론으로, 원래 도읍지를 결정하거나 집터를 잡을 때 양택(陽宅)이 주류였다. ‘명당’은 특히 권력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연이어 대선에 실패하자 유명 지관으로부터 명당을 소개받아 부모 묘를 경기도 용인으로 이장했다. 거주지로 33년간 살았던 동교동을 떠나 일산으로 이사했다. ‘명당효과’였을까. 조상 묘를 옮기고 2년여 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무렵 김종필 자민련 총재,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등도 조상 묘
일상 화법에서 "소설 쓰시네" 하면 없는 사실을 지어낸다는 뜻이다. 2020년 9월 추미애 법무장관이 국회 답변에서 "소설 쓰시네"라는 실언이 도마에 올랐다. 소설가협회 김호운 이사장이 소설을 그저 지어낸 거짓말에 불과한 것처럼 오도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때로는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소설(小說)이라는 말은 한국인들의 언어 습관에서 보통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일정한 개연성과 인과관계의 구조를 갖도록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작된 산문체 문학 장르다. 즉 novel을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그저 사실이 아닌 허구의